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 토머스 앤더슨 (문단 편집) === 감독 이전 === '''구울라디'''[* 앤더슨이 설립한 영화제작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가 아버지를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라는 닉네임으로 공포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성우]] 어니 앤더슨(Ernie Anderson)의 아들[* 형제가 굉장히 많다. 9남매 중 여섯째다.]로 태어난 PTA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 제작에 깊은 관심을 보여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영화 감독이 되는 것을 응원해주기도 했다. 12살 때부터 베타맥스 비디오 카메라로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으며, 고등학생 때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새장 치우는 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첫 영화를 찍기 위한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18살에 30분 분량의 모큐멘터리 <덕 디글러 스토리>를 만든다. 영화광을 자처하던 시절에는 주로 1970년대 미국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기수들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로버트 올트먼]] 감독[* [[매그놀리아(영화)|매그놀리아]]는 소위 올트먼 감독식 촬영 기법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올트먼은 앤더슨을 재능있는 감독으로 인정하고, 그를 매우 아꼈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유작이 된 <프레리 홈 컴패니언 A Prairie Home Companion>(2003) 촬영 당시 자신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여, 앤더슨을 유사시 감독으로 직접 채용할 정도. 다행히 직접 영화 촬영을 무사히 끝마쳐서 그럴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시드니 루멧]], [[조나단 드미]][* [[양들의 침묵]], [[필라델피아(영화)]], 레이첼, 결혼하다(2008)로 유명한 영화감독이며 2017년 4월 26일 타계하셨다. 유작은 어바웃 러키(2015).],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버지.]의 영화들을 보면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분노의 주먹]]》과 《[[좋은 친구들]]》은 백 번 넘게 봤다고 술회할 정도.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마틴 스코세이지]], [[올리버 스톤]], [[스파이크 리]], [[우디 앨런]] 등 많은 명감독을 배출한 [[뉴욕 대학교]] 영화학과에 진학하지만, "'''[[터미네이터 2]] 따위'''"의 시나리오를 제작하고 싶으면 여긴 그런데 아니니 나가라"는 교수의 말에 '''실망'''[* 앤더슨의 세대가 바로 터미네이터 2의 센세이션을 극장에서 직격으로 맞은 세대인데 그 면전에다 대고 이런 소리를 했으니 풀이 죽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앤더슨 본인은 터미네이터 2가 "정말로 멋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당시 헐리우드 영화계는 터미네이터 2의 영화의 기술적 진보에 대해 환영하였으나, 예술성만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고루한 일부 감독들은 터미네이터 2의 단순한 스토리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앤더슨 본인이 이 발언 뒤에 덧붙여 설명하기를, 자신이 터미네이터 2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터미네이터 2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언 같아 실망한 것이라고 한다.]하고, 바로 다음날 뉴욕대를 이틀 만에 자퇴한 다음 등록금을 환불받은 돈으로 단편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한다. [[파일:external/33.media.tumblr.com/tumblr_mph4izeDrl1qi9dhho1_250.gif]] [[파일:external/38.media.tumblr.com/tumblr_mph4izeDrl1qi9dhho2_250.gif]] [* 직역하자면 "교수가 '[[터미네이터 2]]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은 당장 나가라'라고 말했어요. 교수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아요. 제가 만약 터미네이터 2 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면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